'온고지신의 교과서적인 게임 음악'

SEGA의 Outrun (이하 아웃런) 이라는 레이싱 게임을 아는가?
옆에는 금발의 미녀를 태우고 새빨간 페라리 테스타로사를 몰며 도로를 질주하는 게임이다.

1986년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고 1년뒤에 발매된 이 게임은 아케이드를 시작으로
PS, PSP, PC, PS3, XBOX360 등의 기종에 호환되는 수많은 속편을 내놓았는데
그때마다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음악이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차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며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어떤 분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코스가 완전히 달라지고 엔딩도 달라진다.
근데 이건 아웃런이 가지고 있는 기본 게임 컨셉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삽입되는 음악을 바꾸지 않은 것은 조금 놀랄 일이다.

보통은 후속작을 내놓을때 기본 뼈대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모두 갈아치운다.
아웃런도 그랬다. 처음에는 페라리 테스타로사 차량 한대밖에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는 제법 많은 차종이 등장하여 골라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스테이지도 시리즈마다 세계 각지의 명소를 하나씩 추가하여
내가 지금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건물이나 암석, 배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근데 음악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물론, 추가적인 스테이지 음악이 들어가긴 했다.
하지만 핵심 BGM 3곡을 대체하기란 불가능 했다.



아웃런은 시리즈 초창기부터 삽입되었던 3개의 게임 음악이
마지막으로 발매된 후속작까지 그대로 삽입되었다.

아웃런의 메인 테마곡이라 할 수 있는 SPLASH WAVE를 비롯하여
잔잔한 분위기의 PASSING BREEZE,
앞서 언급한 두 곡의 중간적인 느낌을 지닌 MAGICAL SOUND SHOWER까지.
물론, 잔잔한 엔딩 음악인 LAST WAVE도 빼놓을 수 없다.

당연히 레이싱 게임이니 내가 지금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한다.
페인킬러처럼 지옥에 떨어져서 악마들과 죽음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쌩뚱맞은 메탈 음악이 나와서야 되겠는가?

공통적으로 SPLASH WAVE, PASSING BREEZE, MAGICAL SOUND SHOWER
이 3개의 음악은 현재까지 레이싱 게임 음악의 전설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후속작 발매때마다 당시 시대의 기술력을 이용한 리드미컬한 편곡 기법은
현재까지 이 음악들이 회자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2005년 XBOX 기종으로 출시된
아웃런2의 MAGICAL SOUND SHOWER Euro Remix 버전이다.

과거의 오래된 게임 음악을 유로비트중의 재즈로 승화시킨 이 곡은
게이머로 하여금 뚜껑열린 빨간색 페라리를 타고 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아주 충분하다.

SEGA도 이런 자신들의 게임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여 발매했던 자신들의 게임에
아웃런 OST를 삽입하여 게이머들로 하여금 향수에 젖어들게 한 것은 매우 훌륭한 전략이었다.
특히 버추어 스트라이커4에서 관중들이 MAGICAL SOUND SHOWER 를 열창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

아웃런의 게임 음악은 시대가 변하고 후속작이 나오면서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되었다.
이렇게 많은 버전으로 편곡된 음악은 게임 내에서 특정 조건을 만족시킬때마다 새로이 등장하여
과거 초창기 버전의 음악부터 현대적인 느낌으로 편곡된 버전까지 유저 입맛대로 골라 들을 수 있었다.

SEGA는 과거 많은 게이머들로부터 사랑받은 게임 음악을 내팽겨치지 않고
약간의 양념을 더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는 아웃런 성공의 원인을 여기서 찾고 있다.

게임 음악은 과거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의 향수에 젖어들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시각적으로도 이러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장면, 그 느낌으로만 사고하게 만들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청각적인 느낌은 다르다. 듣는이로 하여금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
음악을 듣는 순간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의 순간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게임을 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오르며 향수에 젖어든다.

그런의미에서 아웃런은 유저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게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게 SEGA에서 의도 했던 안했던 적어도 그걸로 성공한 것은 확실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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